2016년 7월 18일 월요일

차범근(車範根, 1953년~ ) - 전 축구선수(UEFA컵 2회우승), 전 수원삼성 감독, 축구해설가



차범근(車範根, 1953년 5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로, 현재 축구 지도자, 해설가,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차범근은 경기도 화성군 안룡면 송산리 (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출생으로 화산초등학교, 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할 당시 독일 사람들이 차범근의 로마자 표기를 부르기 어려워 차붐 (Tscha Bum)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빠른 공간 침투와 공중전에 강한 면모 때문에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2남 1녀 차하나(장녀), 차두리, 차세찌를 두고 있다.

대한민국 공군 사병으로 복무한 그는, 전역 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아시아인으로서는 역대 최다득점이 되는 리그 98골을 기록하였다. 독일에서 활약했을 당시 차붐이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국제 축구 역사 & 통계 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Football History & Statistics), 영국 ESPN통신, 아시아 축구 연맹 (AFC)등에서 ‘20세기 아시아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월드사커지에서는 '잊을 수 없는 100대 스타', '20세기 축구에 영향을 미친 100인'에도 선정되었다.

은퇴 후 MBC의 해설위원으로 해설가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0년 FIFA 월드컵과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SBS의 해설위원을 맡았다. 가족은 부인 오은미, 딸 차하나, 아들 차두리, 차세찌가 있다. 차범근의 이전 A매치 기록은 121경기 55골이었으나 2014년 11월 4일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135경기 58골로 수정되었다.




1976년 10월 공군에 입대해 사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78년 12월에 독일 분데스리가 SV 다름슈타트 98로 이적하였지만 병역 관련 문제로 계약이 파기되었다. (당시 차범근은 공군 팀 전력 강화를 꾀하던 참모총장의 권한으로 2년 뒤 전역을 약속받고, 공군에 입대하였다. 약속된 1978년 12월 복무 기간을 마쳤다고 생각하고, 특별 휴가를 받아 독일로 떠나 SV 다름슈타트 98 입단 계약을 체결하였고 12월 30일 VfL 보훔과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며 좋은 활약을 펼치며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그러나 공군의 입장 변화로 1979년 1월 5일 다시 귀국한 후, 복귀해서 독일로 다시 나가지 못하고 1979년 5월 31일 만기 전역하였다.

병역 관련 문제를 해결한 후, 1979년 7월 분데스리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스카우트된다. 스카우트 후에는 곧바로 1980년 팀을 UEFA컵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고, 이듬해인 1981년에는 팀이 DFB-포칼 우승컵을 드는데 공헌하였다. 1983년 7월에는 분데스리가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여 1988년에 다시 한 번 UEFA컵에서 우승하였다. 이 우승으로 차범근은 각기 다른 두 팀에서 UEFA컵 우승을 차지한 9번째 선수가 되었다.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한 차범근은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리그 경기에서 98골을 기록하여 기존에 네덜란드 빌리 립펜스의 기록(92골)을 경신하고,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최다 골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1999년 스위스의 스테판 샤퓌자가 106골로 경신했다.[5] 그리고 차범근의 308경기 출전은 1977년 덴마크의 올레 비요른모세가 수립한 323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출전 기록이지만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세르게이 바바레즈가 경신했다. 또한 차범근이 1985-86 시즌에 기록한 17골은 지금까지 분데스리가에서 아시아 출신 선수 중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분데스리가에서 활동한 10시즌 동안 단 1장의 옐로카드만을 받았을 정도로 투철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1970년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1971년과 1972년 연속으로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였다. 고려대학교 학생 신분이던 1972년에 당시 최연소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5월 7일 이라크와의 AFC 아시안컵 경기에서 데뷔하였다. 1986년 FIFA 월드컵에도 참가하였다.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전에서 1-4로 뒤지고 있을 때 7분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해 무승부로 만든 일화가 유명하며 특히 일본과의 정기전을 치룰 때마다 눈부시게 활약하였다.

198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였던 1986년 6월 10일 이탈리아와의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A매치가 되었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한 월드컵에서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국가대표로 135경기에 출전해 58골을 넣었는데 A매치 58골은 대한민국 선수 중 A매치 최다 골 기록이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독일에서 영구 귀국한 후 "차범근 축구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 11월 23일 K리그 팀 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아, 1991년 K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1994년 시즌을 마치고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어 팀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1997년 1월 7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2003년 말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감독을 맡게 되어 현장에 복귀했다. 이듬해 2004년에는 K리그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며 감독 생활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았고, 2005년에는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8년에는 자신의 K리그 통산 2번째 우승과 컵대회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여 더블을 달성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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